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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진해수 작성일24-12-08 22:24 조회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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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아파트 현장에선 소방차가 3번이나 왔다니까요. 밖에서 보고 불난 줄 알고 신고한 거예요. 이 먼지 때문에."
12년 넘게 마루를 깔아 왔다는 임승철씨(53)가 작업 전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엄청난 굉음과 쉴 새 없이 움직이던 무시무시한 기계의 칼날. 그는 아랑곳 않고 쪼그린 자세로 거침없이 옆으로 나아갔다. 남의 집 바닥을 그리 열심히 갈았다. 곱고도 평평하게. 마루를 깔기 좋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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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평 집을 돌고 나니 머리도 옷도 안경도 온통 하얗게 변해 있었다. 만져 보니 콘크리트 가루가 덕지덕지 엉겨 굳어 있었다. '마루 노동'이라 해서 마루만 딱딱 맞춰 깔면 되는 줄 알았더니 웬걸.
첫눈이 폭설처럼 내리던 새벽. 6시 반에 도착한 신축 아파트 건설 현장. 그중 맡 4월6일방송 은 건 우리가 딛는 바닥, 마루를 까는 작업. 장장 4시간째 이 지경이 되도록 일하고 있었다. 기침을 콜록콜록하던 내게, 승철씨가 건넨 말이 기막혔다.
"지금까지 일한 건 공짜예요. 아직 0원 번 거예요."





' 은행 사업자대출 1평당 1만3000원'…아직 마루 안 깔았으니 0원










울컥해서 무슨 소리냐고 했다. 지금까지 일한 건 그럼 뭐냐고. 알잖느냐고. 수협 4시간 넘게 일하고 있다고.

힘들다고 생색내는 게 아녔다. 고생한 만큼은 인정받아야 할 게 아닌가. 콘크리트 먼지가 덕지덕지 들어와, 식도를 넘어 폐에 들러붙은 것처럼 찝찝한데. 여태껏 한 푼도 못 벌었다니.
승철씨가 말했다.
"아직 마루를 하나도 못 깔았잖아요. 여기 아파트 현장 축협 은 1평당 1만3000원이에요. '평떼기'라고 해요. 시간과 늘 전쟁하는 거예요. 시간이 다 돈이죠."



마루 1평을 깔면 1만3000원을 번단 거다. 1시간에 얼마, 한 달에 얼마가 아니라. 잠시 멍해져 정리해 봤다. 그러니까 새벽에 와서, 마루를 깔기 위해 바닥을 가느라 4시간이 걸렸는데. 그건 사전 준비 작업이니까 돈을 번 게 아니란 얘기였다.
혹시 이걸 '기사 쓰기'로 비유하면 그런 건가. 취재하고 조사하느라 들인 시간은 하나도 노동으로 안 쳐주고. 기사를 쓰기 시작해야만, 글자 수대로 돈을 주는 그런 거라고. 그럼 얼마나 벌 수 있는지 상상했다.





14시간씩 일·일·일…"컴컴한 현장서 망치소리 들린다면"










그걸 들으니 마루를 빨리 깔고 싶었다. 인터뷰로 말 거는 시간도 미안했다. 실제 '마루 노동자' 중엔, 누가 말 걸면 듣지도 않는 이들이 있단다. 5분, 10분 까먹으니까. 그만큼 못 버는 거니까.

접착제를 쭉 바르고 빨리 마루를 붙이고 싶건만. 이번엔 또 청소해야 한단다. 콘크리트를 간 뒤 나온 먼지들을 치워야 한다고. 안 그러면 마루가 잘 안 붙는다고 했다. 빗자루를 쓰는 내내 조바심이 났다. 오늘 소득은 0원, 아직도 0원. 대체 그럴 수가.
컴퓨터를 전공했단 아들과 아동 심리학을 공부했단 딸 얘길 틈틈이 들었다.
"기자님, 우리 애들은 4년제 장학금을 다 받았어요. 딸래미도 그렇고 아들래미도 그렇고요. 학원도 못 보냈는데, 할 녀석은 하더라고요. 요즘은 일하느라 통 대화도 못 하네요."
새벽 4시 반에 집에서 나왔단 이가 일순간 표정이 환해졌다. 먹여 살릴 가족이 아내까지 셋. 낡은 모자를 거꾸로 쓰고, 손에 비닐을 끼우고. 마루 붙일 그 독한 접착제를 슥슥 섞던 사람, 가장, 아빠이자 남편. 그러니 돈 버는 게 얼마나 간절했을지.



시간 들이는 만큼 버는 일. 그러나 1평당 단가는 고작 1만3000원. 30년 전 단가(1평당 1만원)에 비해 고작 3000원 올랐다고 했다.
벌이를 메울 유일하고 고달픈 방법. 그러니 노동시간이 이렇다고 했다. 잠시 귀를 의심했다.
"하루 12시간은 기본이고, 13~14시간씩 하죠. 오후 4시 반에서 5시쯤엔 건설 현장 노동자들이 다 가거든요. 불 켜놓고 일하는 건 다 마루 노동자들이에요."
최우영 마루노조 지부장이 남긴 기록이 생각났다. 컴컴한 건설 현장에 불이 켜져 있다면, 귀를 기울였을 때 망치 소리가 들린다면, 늦게까지 마루 노동자가 일하고 있는 거라고.





몸은 고단한데, 손은 섬세해야 하는 일










바깥이 가득 쌓인 흰 눈을 보며 잠시 쉬었다. 쉬는 동안에도 맘이 분주했다. 이 시간에 마루 하나라도 깔아야 더 벌 텐데. 평당 단가로 노동을 쳐준단 의미가 그랬다.






마루 노동이 '종합 예술' 같단 생각을 했다. 통상 몸이 고단하거나, 머리가 고달프거나. 대개 노동이 둘 중 한 방향이 있는데. 마루를 쉴 새 없이 나르는 건 무겁고, 쪼그려야 해서 몸은 힘겹고. 그냥 붙이면 되는 게 아녀서 '섬세함'이 굉장히 요구되는 일이었다. 이건 미처 몰랐다.

"기준점을 잘 잡아야 해요. 집에서 제일 반듯한 기준이 어디냐면, 저 거실 창틀이에요. 거의 틀어지지 않거든요. 최대한 수평이 나와야 하고, 계단식으로 잘라주는 거예요."



그러고 보니 집에 붙어 있던 마루 모양이 새삼 생각났다. 같은 크기로 죽 붙어 있는 게 아녔다. 계단처럼 잘라서 일일이 붙여주는 거였다. 이를 위해, 수평이 맞도록, 전체가 다 틀어지지 않도록, 기준점을 잡아준다고 했다. 줄자를 튕기니 길게 선이 그어졌다.
그걸 따라 마루를 재단하고, 거기에 연필로 표시하고. 표시한 선대로 기계톱으로 잘라주는 작업을 했다. 쉬워 보여서 도전했는데, 마루가 순식간에 삐뚤게 잘렸다. 특히 일정하지 않은 모서리, 귀퉁이, 문틀, 가구 등. 그 모양대로 잘 자르지 않으면 집 전체가 틀어지기 십상이었다.



나도 모르게 감탄했다. 고도의 기술이라고. 어떻게 이리 딱 맞느냐고.





전문 기술인데 '유령 노동자' 취급…"21세기 소작농"










기준을 잡으려 그은 선. 그에 맞춰 마루가 깔리기 시작했다. 끝부분을 할 땐 승철씨에게 말도 차마 못 걸었다. 극도로 집중하는 게 보여서였다.

두세 줄 마루를 깔고, 기준점을 다 잡고 나서야 승철씨가 주위를 보기 시작했다. 본드가 묻을 때마다 물티슈로 닦으면서 했다. 내 집처럼 생각하며 한다고 했다. 자부심이 있다고.
마루를 깔아보라고 했다. 본드를 바른 자리에, 마루를 놓고 망치질로 맞물리게 넣으면 되는 거였다. 퉁퉁, 퉁퉁퉁. 퉁퉁, 퉁퉁, 퉁. 퉁퉁퉁퉁, 퉁퉁.



영하 날씨, 금세 땀이 주르륵 흘렀다. 생각보다 잘 안 들어가서였다. 망치질도 요령이 있다고 했다. 승철씨가 이리 말했다.
"팁 하나 드릴게요. 정말 싫어하는 사람 있죠? 마루에다가 그 사람 얼굴을 그려. 마음에 안 드는 상사 얼굴을 떠올려요. 거기다 망치질을 하는 거지. 생각보다 잘 들어갈 거예요."



그 말대로 누군가 떠올렸다. 거기다 망치질을 했다. 쾅쾅쾅, 더 잘 들어갔다. 그러나 손목은 여전히 아팠다. 결국 마루 끝부분을 조금 깨 먹었다. 승철씨의 고무망치는 소리부터 달랐다. 경쾌하고, 빠르고, 힘을 덜 들이는 것 같은데 정확했다.
전문 기술이었다. 어긋나지 않게 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봤다. 억지로 욱여 넣는다고 되는 게 아녔다. 잘 다룰 줄 알아야 했다.



그런데 '마루 노동자'는 직종 코드조차 없다. 도배, 목수, 보통 인부, 배선, 전기. 그래야 대한건설협회가 평균 임금을 조사해 '시중 노임 단가'를 낸다. 예컨대, 타일은 27만8000원, 도배는 22만3000원 이런 식이다. 그게 없다 보니 적정 임금조차 알 수 없고, 일한 만큼 못 받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승철씨가 말했다.
"전문 기능공이 아니란 거예요. 직종 코드도 없이. 채석공이 빠지면 채석공에 들어가고, 도배에 맞춰야 하면 도배공으로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들이 별명을 지었어요. '유령노동자'라고요. 21세기 소작농입니다."





무릎 수술하고도 20일 만에 나왔다, '생계' 때문에










점심을 때우다시피 했다. 컵라면을 코에 박고 먹었다. 살면서 먹어본 것 중 가장 맛있는 편에 속했다. 다 먹고 나니 콘크리트 먼지에 갇힌 상태란 걸 알았다. 얼마나 많이 마셨을까.

승철씨는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저녁에 아예 한 끼만 먹는다고 했다. 시간을 늘 염두에 두고, 치열하게 마루를 붙여야 사는 '평떼기'의 고단함이 그랬다.
늦은 오후로 넘어갔다. 33평을 하는데, 하루 14시간씩 해도 '하루 반나절'은 걸린다고 했다. 시급으로 따지니,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낮은 듯했다. 그에 비해 몸이 느끼는 피로감은 극심했다. 특히 무릎과 허리가 비명을 질렀다. 계속 쪼그리고 앉아서 해야 해서.
승철씨도 무릎 수술을 한 번 했단다. 녹색병원에서 무상으로 받았다. 허리 디스크 등 근골격계 질환이 거의 다 있다고.



녹색병원에서 조사한 결과, 96%가 근골격계 질환을 다 앓고 있었다. 현장에서 아이고, 아이고를 가장 많이 하는 건 마루공이라며. 진통제를 가루로 가지고 다니며, 너무 아플 땐 먹는다고 했다. 아플 때도 걱정하는 게 이런 거였다.
"생계 때문에 마음이 급한 거야. 수술하고 20일 만에 나왔어요. 어떡해요, 생활이 돼야 하니까. 근데 다리가 이렇게 부은 거예요. 그래서 두 달을 더 쉬었지요. 집에선 그동안 생계가 안 되니 고달팠지요."
콘크리트 먼지 등에 노출된 탓에 폐 질환도 많단다. 마루노조 조합원 중 한 명은 폐암 4기로 투병하고 있단다. 그를 보고, 심각히 여긴 녹색병원에서 조합원들 폐 CT를 무료로 다 찍어줬다고. 오죽할까. 방독면이 써야 하는 일. 기계를 돌릴 때면 다른 현장 노동자들이 기겁하고 도망간단, 마루를 까는 일.





"하루 8시간만, 사람답게 일하고 싶어요"










그뿐이 아녔다. 마루를 자르다가 손가락이 날아가는 경우도 부지기수. 화장실이 적고 멀고 열악해 제대로 쓸 수도 없는 상황에. 여름에 비 올 때, 습할까 봐 창문을 다 닫고 33~35도 찜통에서 마루를 두드려 붙이는 일.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못한다. 3.3% 사업 소득세를 내는 프리랜서로 만들어 놓아서다. 노동법과 4대 보험 의무를 지지 않으려는, 건설 회사와 마루 회사의 회피로 인해. 여기에 많게는 5단계까지 죽 내려오며 떼어 먹고 또 떼어 먹는 불법 하도급 구조로 인해.



최우영 마루노조 지부장이 지난 8월, 경제사회노동위원회 회의에서 이리 말했다.
"회사가 마루공을 입맛대로 병행합니다. 비용 지출, 세금에 대해 경비 처리를 할 땐 일용근로소득으로 신고하고요. 굳이 근로자로 안 만들어도 세금 공제가 됐다 싶으면, 가짜 3.3 노동자(사업 소득세 3.3%를 내는 프리랜서)로 만들어 버립니다. 그래서 마루공을 유령 노동자라 말하는 겁니다."



이름조차 없었던 '마루 노동자'들에게 처음으로, 명명할 직종이 생기게 됐다. 내년부터 대한건설협회가 발표하는 임금 실태 조사 직종에 '플로어링 마루시공공'이 포함되게 된 거다. 하루 8시간 기준으로 적정 임금을 책정할 수 있게 됐다.
꼬박 하루를 일하고 집에 돌아오니 마루가 다시 보였다. 이 바닥을 딛지 않고 사는 이가 있을까. 우리가 집에 들어오기 한참 전에, 무릎과 허리로 다니며 다 깔아준 이들. 유령처럼 왔다가 유령처럼 인정받지 못하고 떠났던 이들이 있었다.



집에 와 끙끙 앓듯 후유증이 3일 넘게 간 뒤, 문득 한 장면이 뇌리에 박혀 떠나질 않았다. 마루를 다 깐 뒤 승철씨에게 했던 질문이 이랬다.
"마루를 다 까시고 나면 기분이 좀 어떠세요?"(기자)
보람 같은 걸 조금은 기대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이리 아팠다.
"아, 이제 또 다른 집 시작이구나. 먼지 때문에 난리 나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지요."



에필로그(epilogue).
하루 13~14시간 일을 마친 뒤, 퇴근하면 뭘 하는지 승철씨에게 물었다.
"저녁 밥에 반주 한 잔씩 하는 게 낙이에요. 매일 먹어요. 이 일이 고단하잖아요. 내 스스로에 대한 선물이랄까, 그래요. 오늘 고생했다, 한 잔 먹고 쉬어라. 이게 가끔 서글플 때도 있지요."
우울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다들 아프다, 힘들다, 그런 얘기밖에 안 한다고. 어떨 땐 한 군데 들어가서 마루만 죽어라 까는데, 일주일 동안 사람과 대화도 거의 못 한단다. 외로워서, 사람이 귀하단 표현까지 썼다.
20대 땐 LG산전에서 직장을 시작하고. 중국과 캄보디아에서 봉제 일을 하다 잘 안 됐단다. 승철씨는 애들 옆에 못 있어준 게 가장 미안하다고 했다. 30년 동안 여행 한 번 제대로 가지 못 했다며.
그럼에도 그리 잘 자라준 아들딸이, 얼마 전 적금 모은 걸로 아빠 작업 차량을 하나 사줬다고. 고생 많았다고. 그게 사채보다 더 무섭다며 승철씨는 웃었다. 자식들에게 갚아줘야 한다고.
"취재에 응했던 적이 있거든요. 목소릴 내느라고요. 아빠가 처음부터 끝까지 일하는 모습을 처음 본 거예요. 집에 갔더니 애들하고 와이프하고 울고 불고 난리가 났어요. 아빠가 여태껏 이리 고생하는 줄 몰랐다고요. 안 보여주고 싶은 모습이었는데…."
최우영 마루노조 지부장의 평범한 바람이, 승철씨의 이 이야기와 겹쳐 짙게 새겨졌다. 최 지부장이 이리 말했다.
"바라는 건 단 하나입니다. 마루 노동자로, 사람답게 살고 싶다, 딱 그거 하나뿐입니다."







남형도 기자 huma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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