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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량 밖으로 한걸음 내딛자, 까맣던 밤하늘이 번개처럼 번쩍였다. 어둠 사이로 폭발음과 사이렌이 흩어졌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오후 6시 30분쯤, 레바논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이날 이스라엘의 북부 접경 도시 이스피야를 공격하던 때 기자는 이 현장에 있었다. 현지 주민 바흐지 만수르는 작은 사기잔에 커피를 내오며 “오늘만 헤즈볼라가 로켓 80발을 쐈다”며 “얼마 전엔 우리 동네에서 2명이 죽었다”고 담담히 말했다.
이날 헤즈볼라가 쏜 로켓 80발 가운데 마지막 한 발이 이스라엘 방공망 아이언돔에 격추되는 장 2009년4월6일 면을 목격한 것이었다. 만수르는 “이스라엘은 헤즈볼라뿐 아니라, 가자지구에서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싸우고 있다. 하마스는 팔레스타인에 재난 상황을 초래했다”고 말을 이었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하면서 시작된 길고 긴 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스라엘에서 1200명이 목숨을 잃고, 251명이 하 애드온시스템 마스에 끌려갔다. 인질 중 일부는 돌아왔지만, 101명은 여전히 억류 중이다. 이 가운데 절반은 숨졌다는 추정도 있다. 헤즈볼라는 하마스 기습 이튿날부터 “하마스를 돕겠다”며 이스라엘을 공격했다. 헤즈볼라와 하마스 모두 이란의 배후 지원을 받는 무장 세력들이다.
만수르는 “난 유대인이 아니라 드루즈(이슬람교의 한 분파)”라며 “헤즈볼라의 군인대출추천 미사일에 친척도 죽었다”고 말했다. 이스라엘은 유대인만으로 구성된 국가가 아니다. 만수르와 같은 드루즈, 기독교인, 팔레스타인인 등이 섞여 살아가는 다민족 국가다. 유대인이 주류를 이루지만, 이질적인 종교와 전통의 사람들이 존재하고, 그렇기 때문에 내부적으로 ‘유대인의 이스라엘’이냐를 두고 논란이 계속돼 왔다.
또한 지난해부터 1년 넘 마이너스통장 연장 게 진행 중인 가자전쟁을 계속해야 하는지, 전쟁을 이끌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지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논쟁이 심하다. 네타냐후 총리 퇴임과 전쟁 종식의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전쟁의 역설은,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로켓이 평화주의자와 이슬람 교도라고 해서 피해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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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0일 이스라엘 베에리 키부츠에서 만난 인질 가족이자 주민인 아이얼레트 하킴은 하마스 공격 당시 참상을 생생히 전달했다. 박현준 기자
지난달 20일 이스라엘 남부의 베에리 키부츠(집단 농장)에서 만난 현실 역시 다르지 않았다. 베에리 키부츠에선 하마스 공격 때 1300명의 주민 중 102명이 살해되고, 40명이 납치당했다.
인질 가족인 아이얼레트 하킴은 “여기 살던 비비안 실바는 팔레스타인 여성의 권리에 힘쓰던 평화 활동가였는데 (하마스 공격 때) 죽었다”고 말했다. 하킴의 언니 역시 인질로 끌려갔다가 풀려났다. 형부는 여전히 억류돼 있다. 하킴은 인질 생환을 간구하고 있었다.
이어지는 하킴의 말에는 그림자가 드리워 있었다.
“언니는 54일간 잡혀 있었어요. 여자들에게 성범죄를 저지른다는데, 난 언니에게 묻지 않았어요. 우리 자매는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아무 말도….”
하킴은 끝내 말을 흐렸다. 폐허가 된 이 마을엔 하킴과 같은 주민 100여명이 지울 수 없는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었다.
전쟁은 삶의 흐름을 끊어 놓으려 하지만, 사람들은 잇고 덧대며 저항한다. 하마스에 아들을 잃은 라파엘 시모니 역시 삶의 공백을 기억으로 메우려 애쓰고 있었다. 하마스는 당시 이스라엘인들이 타고 가던 차량에 총격을 가했다. 멈춰선 차를 쫓아가 탑승자를 사살했다. 하마스가 국경을 빠져나간 후 이스라엘인들은 하마스 공격으로 불탄 수백대의 차량을 이스라엘 남부 트쿠마 키부츠 근처의 공터에 모았다.
지난달 20일 이스라엘 트쿠마 키부츠의 공터에 모아놓은 피습 차량들.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가 기습 공격했을 당시 총알자국이 그대로 차량에 남아 있다. 박현준 기자
벌집이 된 차량들의 무덤은 참상의 증언대이자, 추모장이다. 시모니는 여기서 매일 희생자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는 “우리 아들은 자신의 차량으로 하마스 습격 현장을 세 번이나 오가며 시민들을 구했다”며 “그리고 그게 마지막이 됐다”고 아들의 마지막을 얘기했다.
하마스가 왜 돌연 이스라엘을 침공했는지, 아직도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틀은 없다. 이스라엘 민간인들을 죽여서 얻을 수 있는 실익이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그저 죽이기 위한 죽임’을 합리와 이성으로 재단하려는 것 자체가 무모한 시도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이스라엘의 전략적 실패란 측면은 꼭 짚어야 한다. 이스라엘 정부가 팔레스타인의 주류 세력인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와 파타당을 견제하기 위해 하마스를 지원한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팔레스타인의 분열을 위해 부린 책략에 스스로 발목을 잡힌 것이다.
이스라엘이 끝날 기약이 없는 전쟁에 빨려 들어가면서, 억울한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인질들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민 역시 전쟁에 지쳐 있다. 헤즈볼라와는 다행히 지난달 27일 오전 4시부터 60일간의 임시 휴전에 들어갔지만, 지금도 간간히 교전 중이다. 살얼음판 같은 평화다.
지난달 19일 이스라엘 예루살렘 성벽에서 바라본 통곡의 벽. 뒤편의 황금빛 돔은 이슬람교 성지인 바위의 돔이다. 박현준 기자
지난달 19일 미로처럼 얽힌 예루살렘의 성벽을 빠져나오자 겨울 어귀의 밤하늘이 펼쳐졌다. 저편에서 하늘로 층층이 치솟은 상아색 벽돌들이 보였다. 통곡의 벽이었다. 검은 정장에 검은 중절모를 쓴 정통파 이스라엘인부터 청바지 차림에 키파(유대교식 전통 모자)를 쓴 세속의 이스라엘인까지, 이마를 벽에 맞대고 간절히 읊조리고 있었다. 인질들의 생환과 평화를 위한 기도를 올리고 있었다. 벽돌 사이에는 이들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소망을 적은 쪽지를 끼워 넣기도 한다.
“온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자비를 내려주십시오. 인질들의 무사 귀환을 위해 기도합니다.”
올해 1월에도 통곡의 벽에 수천명의 이스라엘인이 모여 이렇게 기도했다고 한다. 기도하는 마음이 모여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평화가 찾아오기를…. 밤하늘 아래에서 모두가 그 날을 기다리고 있었다. 중동에 평화는 언제 찾아올 것인가.
이스피야(이스라엘)=박현준 기자 park.hyeon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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